소아청소년 질환정보
[소아정신건강의학과] 체벌, 훈육과 학대 사이 | ||
---|---|---|
체벌, 훈육과 학대 사이
최근 들어서 아이를 굶기거나 때리다가 죽음에 이르게 하는 등 아동학대 사건들이 여러 건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아동학대의 80% 이상은 친부모에 의해 저질러지고 있으며, 아동학대로 법정에 서게 된 부모들 중 상당수는 자신의 행동이 아이의 훈육을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합니다. 실제로 평범한 부모님들 가운데서도 ‘아이는 때리면서 키워야 한다’고 생각하시거나, 체벌을 하거나 집에서 내쫓는 것이 훈육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을 하는 분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엉덩이나 머리를 때리는 것을 포함해서 체벌을 훈육방법으로 쓰는 것은 어떤 연령에서든지 부적절합니다. 아이를 때리면 일단 즉각적으로 문제가 된 행동을 멈출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장기적으로 그 행동이 사라지게 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아이들에게 부모는 자신을 지켜주고 보호해주는 가장 중요한 존재인데, 그런 부모가 소리를 지르거나 때리면 아이들은 깜짝 놀라고 당황합니다. 일단 부모가 자신을 때렸다는 사실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도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우선 겁을 먹거나 아이들도 화가 나기 때문에, 자기가 뭘 잘못해서 맞았는지, 그래서 엄마가 뭐라고 말하는지를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이의 행동을 장기적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아이도 부모도 좀더 차분해져서 감정을 조절하고 논리적으로 생각을 할 수 있는 상태에서 찬찬히 설명하면서 타이르는 것이 더 낫습니다. 그리고 아이의 행동을 지속적으로 관찰하면서 바람직한 행동을 하거나 잘못된 행동을 줄여가려고 노력하는 것에 대해서 칭찬해주고 격려해주는 행동수정을 시행하는 것이 좋습니다.
부모가 아이를 훈육하는 방식은 아이가 어떤 사람으로 자라는지에 영향을 미칩니다. 아이를 때리게 되면 아이가 부모의 눈치를 보게 되고 정서적으로 위축됩니다. 순간 겉으로는 움츠러들지만, 마음 속으로는 분노를 삼키게 됩니다. 그리고 부모가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폭발하는 모습을 보이게 되면 아이도 “감정은 다른 사람에게 폭발해도 되는 것”이라고 본능적으로 느끼게 됩니다. 부모에게는 무서워서 그렇게 못하지만 동생이나 친구, 강아지와 같이 자기보다 약한 존재에게 분노를 폭발하기도 합니다. 유치원에서 친구를 때린다고 해서 병원에 온 5살 여자아이에게 “친구가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하려고 해서 속상했구나. 그래도 친구를 때리는 것은 잘못된 일이야.”라고 말했더니, “저희 아빠는 저를 맨날 때리는데 저는 왜 친구를 때리면 안돼요?”라고 되물은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분노를 폭발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더라도 나중에 청소년기나 성인기가 되어가면서 점차 감정을 조절하는데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체벌은 대개 부모가 아이들 때문에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화가 났을 때, 아이를 때리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시작됩니다. 즉 아이를 때리면서 아이의 행동을 가르치는 것보다는 부모 자신의 화를 풀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처음에는 훈육을 위해서 엉덩이나 머리를 한두 대 때리는 체벌로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멍이 들 정도로 심하게 때린다거나, 발바닥을 바늘로 찌른다거나, ‘너 같은 아이를 괜히 낳았으니 죽어버리라’고 말을 하는 것과 같이 심한 아동학대로 진행이 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학대를 당한 아이들은 애착관계에 심각한 문제를 겪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의 감정상태에 매우 민감하여서 눈치를 보고 위축되어서 다른 사람들이 다정하게 대해서 쉽게 풀어지지 않거나, 남들에게 지나치게 다가가서 친한 척하면서 쉽게 애착을 맺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엄마가 자신을 안정적으로 돌봐주는 경험을 통해서 세상은 안전한 곳이고 자신은 사랑 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가지게 되는데, 학대를 당하게 되면 아이들은 “세상은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 내 편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는 가치 없는 존재이다”라는 느낌을 가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유아기에 학대를 당하면, 이후의 신체, 언어, 인지, 사회성 발달이 지연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유아기나 아동기의 신체적, 정서적 학대는 성인기의 성격과 정신건강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체벌은 아이를 올바르게 훈육하려는 교육적인 목적으로 시행되었다고 하더라도, 아이의 정신건강과 발달을 저해하는 결과가 발생할 위험이나 가능성이 있다면 아동학대에 해당합니다. 지금 내가 하는 것이 훈육인지 학대인지 고민이 될 때는, 같은 행동을 다른 사람이 우리 아이에게 해도 좋을지 생각해보세요. 다른 사람들이 우리 아이에게 하면 아이들의 마음에 상처를 입힐 것 같은 행동, 그런 행동이 아동학대입니다.
글 : 서울아산병원 어린이병원 소아정신건강의학과 김효원 교수 |